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욥 30:16~31
2022-05-20

16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17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18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19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
20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
21 주께서 돌이켜 내게 잔혹하게 하시고 힘 있는 손으로 나를 대적하시나이다
22 나를 바람 위에 들어 불려가게 하시며 무서운 힘으로 나를 던져 버리시나이다
23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
24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
25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26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27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
28 나는 햇볕에 쬐지 않고도 검어진 피부를 가지고 걸으며 회중 가운데 서서 도움을 부르짖고 있느니라
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30 나를 덮고 있는 피부는 검어졌고 내 뼈는 열기로 말미암아 탔구나
31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나는 주께서 모든 살아 있는 것에게 정해진 집, 곧 죽음으로 나를 끌고 가실 것을 압니다. 그러나 사람이 망해 가면서 어찌 손을 뻗지 않겠습니까? 재앙을 당할 때 어찌 도움을 청하지 않겠습니까?(23~24, 우리말 성경)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두려움 가운데 있는 욥은 자신의 심경을 고백합니다. 얼마나 힘든지 그의 내면을 환난으로 인해 무너져 버렸습니다.(16절) 밤마다 오는 육체의 질고로 인한 고통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더욱 잔혹하고 모질게 욥을 내려지실 뿐입니다.(21절) 욥은 이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넘어질 때도 돕지 않으십니다.(24절) 그래도 욥은 환난으로 인한 통곡과 애곡으로 주님께 나갑니다.(31절)

참 어려운 일입니다. 고난당하는 자를 돕지 않는 하나님! 불의와 악이 성행하는데도 가만히 계시는 것 같은 하나님! 이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하나님의 부재감은 신앙에 있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유없이 당하는 고난은 우리가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곳에 신앙의 진수와 깊이가 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죽습니다.(행6장)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의 고난과 죽음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것을 스데반이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행7:55)

오늘 욥이 겪는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출산의 고통은 누군가가 잘못해서 겪는 고통이 아닌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오게 하는 대가로서의 고통인 것처럼, 예수님의 고난이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하신 것처럼, 잘못의 대가가 아닌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침묵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고난은 아무에게나 오는 것도, 짊어지고 싶다고 짊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이 고난은 철저히 그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이루어내야 하는 고난이기에 하나님께서도 참고 기다리시며, 스데반의 고난을 서서 지켜보실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엄마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해산의 고통는 그 자식의 어머니만이 가질 수 밖에 없는 고통입니다. 고통의 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고통은 그 엄마만이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의 고통은 아무렇지 않고, 날마다 죽을 것같고, 죽을 것을 각오하여도 그 고통의 신음과 고백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24절) 대답이 없으셔도 부르짖을 수 밖에 없고,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욥에게 본받아야 할 점은 이런 애과 통곡속에서도 주님을 바라고, 주님을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께 계속 절규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고,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절규도, 통곡으로, 애곡으로 고백할 때,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선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 숨 내쉴 때, 침묵하시는 주님을 대할 때, 주님이 안 계신 것 같을 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을 바라보시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하소서. 여전히 약하고, 너무나 힘들어서 환난 가운데 투정합니다. 예수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우리에게 있는 고난을 견디고 이기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믿음이 없나이다.

중보기도

알 수 없는 고난으로 지치고 상한 마음에 주님의 위로가 있게 하소서!
욥기를 읽으며 고난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삼킬 자를 찾는 사탄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믿음이 흔들리고 없는 이들에게 믿음을 더하셔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오늘 드려지는 수요예배위에 하나님의 임재와 이끄심이 가득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