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자부심은

믿음이 아닙니다

욥 36:1~15
2022-01-23

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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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들이 순종하고 그분을 섬기면 그 날들 동안 번영하고 그 연수만큼 즐겁게 살겠으나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칼에 쓰러지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죽을 것입니다.(11~12절, 우리말 성경)

과장된 자부심은 믿음이 아닙니다

엘리후의 마지막 발언이 시작됩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고난의 원인을 욥에게 말하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재앙이 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엘리후는 재앙은 돌이키기 위한 징계의 방법으로 고난은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회개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자신을 ‘지혜를 가진 이’라고 확신하며(4절), 자신이 하는 모든 말들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번 주장과는 달리 욥의 했던 말들을 인용하지 않고, 꼬투리를 잡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주장으로만 발언을 해나갑니다. 바른 말처럼 들리는 엘리후의 주장들은 상대방인 욥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힘들어하고 탄식하는 사람에 대한 긍휼과 배려가 부족한 가운데서 나오는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에게서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오늘 본문에서 드러나는 것은 과장된 자부심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틀린 말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누구도 맞는 말만 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에게도 이 부분은 분명히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성 어거스틴 Aurelius Augustinus, St. Augustine은 믿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믿는 사람은 죄를 안 지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엘리후는 자기가 하나님을 위하고 있으며, 자신에게는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1,4절) 확실한 믿음이 그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과장된 자기 기준과 자부심은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배제하고,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둔갑시킵니다. 엘리후가 엄청난 교만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입니다.

사탄은 단지 욥만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에게는 그가 가진 것을 빼앗은 재앙으로 욥을 쓰러뜨리려 했다면,(욥1:9) 모든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욥의 친구들에게는 그들의 가진 믿음과 자부심을 부추겨서 모든 것을 잃고 괴로워하는 욥을 통해서 하나님과 욥을 위한 생각을 고취시킴으로 정착 하나님과, 욥과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친구들을 통해서 사탄이 사용한 방법은 그들이 가진 신앙의 연륜과 지식과 지혜에 대한 자부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엘리후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님을 죽이게 됩니다.(딛3:9)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을 위한 말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고, 생명력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하나님보다도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한 과장된 무엇이 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산을 옮기지만, 과장된 자부심은 헛된 신화처럼 들릴 뿐입니다.

오늘의 기도

군사가 없어도 강력한 주관자가 되시고, 창이 없어도 강력한 투사가 되시는 주님! 이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시기보다 조용히 평화의 왕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당신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만과 교만으로 다른 이를 함부로 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더 있어 보이고, 잘나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과 믿음을 포장하지 않게 하시고, 겨자씨만한 믿음을 허락하셔서 생명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게 하옵소서.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중보기도

예수님 앞에 나오는 이들이 있는 모습 그래도 주님께 나와 주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전하는 이들이 자기 자랑과 자기 생각이 아닌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전하게 하소서.
자신의 보잘 것 없음과 믿음 없음을 고백하는 이들이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을 전하는 이들이 자신이 만나고, 경험한 예수님을 소탈하게 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