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출발점

눅 7:11~ 17
2022-09-26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주께서 그를 보시고 불쌍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마라.” 그리고 관에 손을 대시니 관을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년아,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13~ 14절, 쉬운 성경)

믿음은 관점입니다

절망하고, 죽음과 같은 낙담하고 있는 이들에게 오늘 말씀은 참으로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길을 가시다가 만난 청년의 장례행렬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어머니 과부에게 ‘울지 말라’하시고, 관에다 손을 대시고 죽은 청년을 일으키십니다. 이것은 성경에만 있는 이야기도,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와 최선의 상태를 갖춘 사회, 즉 이상향(理想鄕)을 말합니다. 인간은 종종 그런 세상과 세계를 꿈꾸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에게 좋은 것, 좋아 보이는 것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이 유토피아의 뜻은 헬라어 우토포스로  [u:우] + “곳/장소”를 뜻하는 τόπος[topos:토포스]가 합쳐진 단어로 ‘어디에도 없다’입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하고, 막연한 긍정을 말하지만 죄로 망가진 세상에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고, 질병을 만나고, 실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래서 낙망하고, 좌절하고, 무엇보다 인간의 한계의 끝은 사망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단하고 힘겨우며 괴로움이 도처에 있는 지뢰밭 같은 인생길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세상의 절망, 한계를 주님께서는 불쌍하게 보시고, 비통하게 보십니다.(요11:38) 내가 가는 길과 행동들을 누군가가 공감해 주고, 아파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이 여기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생각보다 크신 일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장례식조차도 예수님을 만나고 생명이 움트고, 다시 시작합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는 모든 것은 우리가 잘해서 잘살고 잘 먹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강도같이 다가오는 죽음이나, 질병, 실패들은 결코 우리의 삶의 주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안타까운 사건들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무차별적으로 다가옵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사건을 바라보고,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의 생각대로 바라보게 됩니다. 믿는 자도 죽을 수 있습니다. 믿는 자도 병들 수 있습니다. 믿는 자의 가게도 망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의 시도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다 끝나버린 관에다 손을 대시는 예수님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것을 드렸는가보다도 먼저 우리를 불쌍히 보시고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관점을 갖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자주 넘어집니다. 주님!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주님! 낙망이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사랑하셔서 불쌍히 여기시고, 행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습니다. 주님! 당신 안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허락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의 크신 능력을 더욱 신뢰하게 하옵소서. 주여 믿사오니,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중보기도

사망의 권세와 슬픔에 빠진 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회복하여 주옵소서.
병들고 낙망한 영혼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주의 구원을 보게 하옵소서.
끝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믿음을 가진 이들이 주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과 눈을 갖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