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의 한계

창 27:15~ 29
2022-09-28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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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야곱을 만져 보고 말했습니다. “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 같은데 손은 에서의 손처럼 털이 많구나.” 이삭은 야곱의 손이 에서의 손처럼 털이 많으므로, 그가 야곱인 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이삭이 물었습니다.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냐?”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22~24절, 쉬운 성경)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간의 한계

리브가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야곱에게 입히고 그의 손과 목의 매끈 매끈한 곳에 가죽도 입힙니다. 이삭이 먹을 별미를 만들어 야곱에게 줍니다.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신 후 에서로 변장한 야곱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고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결과가 좋다고 다 좋고 하나님의 뜻을 아닙니다.(삼상15:15) 리브가와 야곱의 오늘 행동들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이 눈이 멀어서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들에게 빌미를 주는 말씀도 아닙니다. 인간은 믿는 자건, 믿지 않는 자건 실수와 잘못, 권모술수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삭은 어떻게 저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넘어갈 수가 있을까 생각을 갖게 됩니다. 눈이 어두워 잘보지 못하고(1절)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23절) 이삭이 쇠약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삭의 약점을 이용하고, 축복을 가로 챈 것이 바로 리브가와 야곱이었습니다. 그런 축복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삭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시고, 이삭에게 복의 권한을 주시고, 이삭의 한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라고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하다는 말은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에게 참되고, 진정한 자유를 이룰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고후3:17) 그래서 성령의 열매에 절제가 있습니다. 주의 영이 계시면 우리가 참된 것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을 하는 참된 자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나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겨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전에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특히 죄악의 행동들에는 그렇습니다. 야곱은 복을 받았지만,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나그네 길이었습니다.(창47:9)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간의 한계와 그릇된 행동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이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행하는 많은 계획가 행동들 속에 하나님을 향한다고 하고 하나님을 말하지만 내 깊은 곳에 욕심이 담겨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 밝히 알게 하셔서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게 하옵소서. 때로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행동을 행하여서 나와 내 주변에 어려움이 옵니다. 고통과 어려움 중에도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이끄시나이다.

중보기도

주님의 이름으로 그릇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이키고 깨닫게 하옵소서.
믿음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성도들의 잘못들을 용서하여 주시고 회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상처받고, 아픔을 겪었던 이들을 회복하시고 치유하여 주옵소서.
내일 드려질 주일예배와 당회위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이끄심이 넘쳐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