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에 처했을 때

최종환 목사 (요한복음 20:19~23(신약 183면))
2020-05-31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요한복음 20:19~23(신약 183면)

19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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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곤경에 처했을 때
요 20:19~23

우리가 부활절이후 일곱 번의 주일을 지내고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낙망하고, 포기하려던 제자들에게 새로운 힘이 되고 기쁨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고, 그런 제자들의 모습과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힘을 얻고, 다시 나아갑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속에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삶의 자리는 어떠했는지를 안다면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도 큰 힘이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큰 곤경에 빠져있었습니다.(19절)
언제나 한솥밥을 먹으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셨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겐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500명의 증인(고전15:5~8)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순차적이지요. 즉 예수님의 부활은 못 본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전히 예수님의 도당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체험은 상황을 극복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함께 신비를 체험한 사람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조차 부분적인 체험은 도리어 공동체를 깨트리는 위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들이 오순절(五巡節) 즉 50일이나 계속되었던 것입니다.(행2:1)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응답을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의 자리는 계속해서 곤혹스러운 상황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해야합니다.(19절, 골3:15)
그러나 놀랍게도 믿음의 선배들은 이런 과정들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쟁이들이 갖는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예수님의 도움이 가장 강력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실패와 좌절, 요즘 젊은이들 말로 멘붕이 온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비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힘든 상황이 오면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합니다. 사람이 슬프거나 화가 나면 아이큐가 80~90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적장애 3급에 해당하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화가 나거나, 슬퍼지면 바로 이런 상태가 됩니다. 이때 우리는 예수님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 즉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 상황을 넘어서는, 아니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풀고, 떠나보내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20절)
이 평강이 주장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막혀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우리가 복을 못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그런 사람이 한 사람 나옵니다. 바로 도마입니다. 도마는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한 슬픔과 아픔이 막혀있습니다. 그런 도마에게 예수님이 하신 것은 바로 당신의 손과 옆구리의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시고, 만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로 막혀서, 힘들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만져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제자들은 곤경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성령의 강림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