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쁨과 구원의 은총

최종환 담임목사 (누가복음 19 : 1~10)
2023-04-30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누가복음 19 : 1~10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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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예수님의 기쁨과 구원의 은총

19:1~10

 

오늘은 우리교회를 주님께서 허락하신 66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고향을 떠나 정처없던 이들에게 영원한 본향이 되어주시고, 품이 되어주시기를 66년을 한결같이 해주셨음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무궁히 역사하실 우리 주님을 높이고, 교회와 함께 하기 위해 성도님들을 초청하고 초대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삭개오는 가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2)

삭개오는 부자였으며, 비록 자기 동족에게는 욕을 먹고, 없신 여기는 직업이었던 세리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롭고, 허전했으며, 정처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물질 만능의 모습이 팽배해진 오늘날 우리는 삭개오와 같은 삶을 살거나, 삭개오보다 더 못한 삶을 산다고 느껴집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나는 돈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분명히 의.식.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의식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삭개오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의 필요와 더불어 목마른 사슴처럼 헤메이는 이들을 주님께서는 부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초대하십니다(5)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여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십니다. 오늘 삭개오에게는 육체를 가지고 계셨기에 눈에 보이는 집으로 가셨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영으로 임하시는 주님을 우리 심령의 집으로 모실 수가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구분하면 좋은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좌정하시는 것은 세례와 같이 한번으로 완성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우리의 중심에 모시는 일은 한번으로 멈추는 일이 아닌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성찬을 모시는 것처럼 우리가 계속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삭개오에게 주님은 너희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주님께 나오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초대하셔서 하늘의 복과 영생을 허락하시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고 구원을 베푸십니다.(9~10)

“예수님 기뻐 춤을 추시네.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라는 가사의 찬양이 있습니다.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다윗이 기뻐한 것처럼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고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이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알아갑니다. 그래서 믿음의 연조가 깊을수록, 오래 될수록 그 진가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이 오래된 것보다 예수님을 기뻐하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회의 역사가 복된 것입니다. 우리가 66년을 기념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을 힘입어 누군가를 불러보고, 초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재난을 담당하게 되더라도 기죽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모든 불행에서 건지시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이렇게 66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