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웁니다

최종환 목사 (창세기 45:1~15(구약 71면))
2020-08-16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창세기 45:1~15(구약 71면)

1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2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 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이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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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요셉은 웁니다
창 45:1~15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가요? 이 세상을 향한 굳은 의지로 볼 수도 있고, 가부장적 남성에 대한 억압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물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닙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사회는 이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은 ‘가심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감정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 어떤 것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중요한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주신 중요한 그 무엇입니다. 오늘 요셉의 눈물을 통해 우리의 삶에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정을 통해 우리는 구원받습니다.(1절)
오늘 요셉은 웁니다. 이 말을 더 직역해 보면 울면서 소리를 칩니다. 모진 인고의 세월, 맺혔던 그리움과 한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생각보다 우리를 더 잘 압니다. 요셉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에게 특출나게 사랑받고, 갑자기 팔려가 노예가 되고, 모함으로 사형수가 되고, 다시 형들이 어려움으로 자기를 만나게 되는 이 드라마 같은 인생의 굴곡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치유의 시작, 용서의 시작을 바로 눈물로 허락하고 계십니다. 울고 싶다고 우는 것 아니고, 웃고 싶다고 웃은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감정의 표현은 우리를 치유해 줍니다.

용서는 사실은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4절)
형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요셉은 사실부터 이야기합니다. 애굽은 판 요셉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줍니다. 잘못한 사람이나, 죄를 지은 사람은 사실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받기 위해서나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이 불편하고 회피하고 싶은 사실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이것이 서로에게 용서와 회복의 시작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여야 합니다.(5,7,8절)
종종 우리는 우리 생각해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부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예중에 하나가 직분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장로, 권사, 집사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사람이 직분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에 얼마나 큰 장애물이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자기가 노예로 팔리고, 모함을 받아 사형수가 되고, 총리가 된 것이 다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훈련을 할 때, 하나님이 이루시고, 주시는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합력이 어그러지고, 깨져버린 죄의 권세를 이기게 하고, 무너지고, 상처받은 공동체를 회복하게 됩니다.(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