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함과 조급함의 위험성

최종환 목사 (출애굽기 32:1~14)
2019-09-29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출애굽기 32:1~14

1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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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삶에 일어나야 하는 일들에게 대해서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간절하거나, 급한 일이라고 생각할때도, 주변의 상황이 어려운 때도 말이지요. 이런 때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좋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릅니다.(1절)

오늘 본문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직전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을 올라간 40일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깊은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더 나가서는 초조함을 경험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집중해야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더딤을 보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시고 돌판에 새긴 십계명을 주십니다. 이 시간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르기에 초조해 집니다. 무엇때문일까요? 무엇이 초조해졌을까요? 바로 자신이 가진 시간 때문입니다. 더딤이라는 단어는 ‘부끄럽다’라는 뜻과 ‘무가치하다’란 부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40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무가치하고, 자신의 생각에 필요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은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야기를 나누시고, 돌판을 새기시고 계시다는 것을요. 이것이 40일이나 필요했을까가 아니라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더나아가서 믿음은 우리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기에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는 것이 믿음입니다.

 

초조함과 걱정은 믿음의 적입니다.(1절)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애타고 승전보를 기다립니다. 요즘을 실시간중계를 통해서 우리는 바로 바로 알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면 우리는 납득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설명이 없고, 가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40일을 광야에서 기다립니다. 기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걱정이 생깁니다.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 알지 못함은 이스라엘 백성에서 걱정과 초조함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는 우상을 만드는 타협을 합니다. 결국 걱정과 초조함은 조급함을 만들어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서 주고자 하셨던 복을 저주로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구원을 얻습니다.(11~14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진노하시고 당신께서 주고자 하셨던 복을 거두는 것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을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 엄청난 일을 막아선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시오. 그는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거론합니다.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살았던 믿음의 사람,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회를 갖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복을 준비하고 계실까요? 무엇을 계획하고 계실까요?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