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또 다른 방법

최종환 목사 (마태복음 2:13~23)
2019-12-29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마태복음 2:13~23

13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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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하나님의 또 다른 방법
마 2:13~23

우리는 언제나“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은 우리 교회의 모든 공 예배에서 고백되어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을 대신해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지켜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전능함을 보여주시기 보다는 나약함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말구유에서 나셨지만 천군과 천사의 나팔소리와 찬양소리, 목자와 동방박사들의 방문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래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 가정을 지키시는 방법을 다르게 사용합니다.

도망가게 하시는 하나님(13절)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엘리사와 같은 일이 있어나기를 바랍니다.(왕하 6:17절) 불 말과 불 병거를 통해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가정을 애굽으로 도망하게 하십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힘없이 도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실까요?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사태에서 갈릴리 인근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다 죽어가는 댓가를 치르는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가정을 도망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개혁하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만이 아닌 더 근본적인 문제, 인간이 가진 죄의 문제를 몸소 담당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폭력성속에서 노출되시고, 그런 일을 당하는 우리에게 이길 힘을 주십니다.(히4:15) 두 번째 대답은 하나님께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아흔 아홉마리 양보다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눅15:7)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기에 우리는 많은 어려움과 힘듦, 그리고 절망을 경험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길 잃은 영혼에게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댓가들을 지불하며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15절, 18절)
종종 세상이 어려워지면서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견디는 것이 이기는 거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복지부동하고, 구태의연한 사람들의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믿음을 가지고 이 말을 한다면 이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 됩니다. 우리 생각과 우리 기분에는 아닐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 속에서도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애굽에서 불러내는 것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호11:1), 라마에서 슬퍼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고 그것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분들의 활동 시기는 약 800~600년 전으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도망가고, 피하는 힘없는 모습속에서도 당신의 일을 이루시고 나아가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2019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가 어쩌면 개개인이 내세울 것 없이, 아니 초라하게 한해를 마무리 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 계심을 말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