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최종환 목사 (출애굽기 14:19~31(구약 103면))
2020-09-13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출애굽기 14:19~31(구약 103면)

19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21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23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더라

30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31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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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출 14:19~31

우리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큰 어려움 중에 하나는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논리에 국론이 분열되고 진짜 추구해야 할 것을 추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호남과 영남도 진영의 한몫을 했습니다. 이것이 나라 발전과 정치발전에 도움을 주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압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통이나 자유라는 논리가 교회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자기의 출신, 성향 등을 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진짜 우리가 꼭 편에 들어야 할 분이 계십니다. 오늘 본문으로 우리가 이런 진영이라는 지협적인 시각을 넘어서서 더 큰 하나님의 시각과 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주관하십니다.(21~22절)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은 기독교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기적, 환경을 다시금 보십니다. 얼마나 장엄한지 모릅니다. 밤새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바닷물을 뒤로 밀어나게 하시고, 바다를 말리시고, 물들이 벽을 이룹니다. 홍해 바다는 수심이 깊기로 유명합니다. 이 엄청난 환경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배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23절에 보면 애굽의 군대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길을 걸어갑니다. 환경은 누구에게나 같이 적용됩니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습니다.(22, 24~25절)
이 엄청난 기적은 누구에게는 기적이 되고, 누구에게는 멸망이 됩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멸망을 당하는 애굽 사람들의 말을 들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의 편이 되어 우리 애굽 군대를 치신다.”라고 말합니다. 즉 홍해 바다가 갈라져서 길이 되고, 바닷물이 벽이 되는 이 엄청난 환경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축복의 과정이요,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적이지만, 애굽은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하고, 멸망받은 심판의 자리가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향이 보수일 수 있고, 진보 일수 있습니다. 나의 출신지가 호남일 수 있고, 영남일 수 있습니다. 나의 신앙의 성향이 자유주의일 수 있고, 정통주의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요즘 새벽 예레미야의 말씀으로 우리가 나아갑니다. 하나냐라는 선지자는 선지자임에도 하나님의 편이 아닌 거짓의 편에 섭니다. 그리곤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성향이 아닌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설 때 믿음이 자랍니다.(31절)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중요한 교회의 직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지는 못합니다. 옛날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지금 그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마지막 절을 보십시요. 하나님 편에 섰던 이스라엘은 엄청난 믿음으로 이 자리를 건넜던 것이 아닙니다. 의아해하면서, 혹시나 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그전에는 모세를 원망하면서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 선 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믿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 납득이 안되는 환경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