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사죄의 권세가

생겼습니다.

눅 23:20~34
2022-09-28

20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21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22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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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34절)

용서와 사죄의 권세가 생겼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34절)

용서와 사죄의 권세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언제나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 보이는 것은 바로 사단의 승리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죄와 사망을 권세를 이기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사탄은 욕심과 죄악을 가진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배신한 제자에 의해서 승리합니다. 두 번째가 바로 이런 사망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시는 하나님의 완벽한 승리, 단번에 이루신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히10:10)

십자가는 꼭 부활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혹 우리가 죄악을 생각나게 하고, 우리의 실패가 생각난다면 우리는 이런 십자가경험만이 아닌 이 모든 것들을 사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꼭 같이 생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세상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셨던 십자가(사53:6)에서 예수님을 7번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을 가상칠언(架上七言)말합니다. 이 칠언은 예수님의 이루신 놀라우시고 완전하신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인간의 가장 참혹한 죄악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그들은 악을 행하기 위해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하나님의 뜻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자신과 자신들의 자손에게 십자가의 저주를 돌리는(마27:24~25) 엄청난 대가를 지불합니다. 악을 행하는 이들도 목숨 걸고 악을 행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마지막으로 세상의 성난 파도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나약하고, 나태한 인간의 한계가 일조합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의 고백인 사도신경으로 고백합니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사”로 표현하는 것을 바로 그가 이 모든 책임을 가지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역할과 자리를 자기의 이익과 눈앞에 것과 타협하게 되는 인간의 욕심도 자리합니다.

이 모든 죄악이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예수님을 이 죄악의 짐을 담당하시고, 이것을 이기게 하시고, 승리하셔서 이 죄악을 우리에게 이기게 하십니다. 오늘 주님의 축복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34절, 공동번역)

주께서는 모르고 하는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지만 이것이 다른 이를 해치고, 낙망시키고, 시험에 들게하고, 심지어는 죽이는 일인지 모르고 서슴지 않고, 열심히 행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모르는 죄악까지도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고백하는 주님의 기도처럼 우리 또한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사죄하는 놀라운 권세와 축복이 예수님 덕분에 생긴 것입니다.

맹목적으로 모르고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모르고 그런 일을 행합니다. 이런 이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권세와 축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모든 죄악을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는 피 흘리는 일에 빠르고, 우리의 입술은 독설과 저주가 가득합니다. 또한 평강의 길을 잃고 헤맵니다. 이런 우리를 용서해 주신 당신의 크신 사랑과 놀라운 은혜에 힘입어 다른 이들을 용서하게 하시며, 용서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용서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중보기도

우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는 이들을 위해서
핍박과 어려움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 회복과 용서의 능력이 임하도록
오늘부터 시작되는 집중새벽예배위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집중새벽을 인도하는 주의 종위에 성령의 역사가 있도록 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