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응답은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출 5:15~6:1
2022-07-05

15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이르되 왕은 어찌하여 당신의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16 당신의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당신의 종들이 매를 맞사오니 이는 당신의 백성의 죄니이다
17 바로가 이르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지라도 벽돌은 너희가 수량대로 바칠지니라
19 기록하는 일을 맡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희가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22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6: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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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로에게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는, 그가 이 백성을 더욱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구하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계십니다.(23절, 새번역)

하나님의 응답은 끝까지 가봐야 압니다

자신들에게 닥친 일이 무엇인지를 안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에게 “주님께서 당신들을 내려다 보시고 벌을 내리시면 좋겠소. 당신들 때문에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있소. 당신들은 그들의 손에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칼을 쥐어 준 셈이오.”(21절, 새번역)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학대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고(출3:9) 하나님께 아뢰었던 그들이지만 조금 더 힘들어지자, 자신들에 대한 학대가 모세 때문이라고 기도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가 파라오를 찾아가 당신의 이름으로 말한 뒤로 이 백성은 더욱 들볶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건져줄 기미도 보이지 않으십니다.”(23절, 공동번역)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어려움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가 가는 길을 굽게 만들고, 희미하게 만듭니다. 더나가 하나님의 일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투정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그 마음을 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망한 사람, 낙심한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시34:18)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모세지만,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내어 놓으면서 점점 더 민족의 지도자,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어져 갑니다.(엡2:22)

하나님의 일이 진행하는데 도리어 교난과 역경, 부딪힘이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리학의 관성의 법칙처럼 하던 것을 계속 하려던 습성과 환경, 그리고 세상이 하나님의 일과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뜻이 하나님의 방향과 맞는 경우에는 부딪힘보다는 시너지가 일어납니다. 상황과 환경이 하나님의 뜻과 상황 안에 있는 경우는 도리어 죄나 불경스러운 일을 하게 될 때 우리가 부딪히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아주 쉬운 예로 교우들과 식사를 하거나 교회에서 식사를 할 경우에는 식전기도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봅니다. 여기서는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식당이나 회사식당, 술자리를 앞에 놓고 식전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상한 눈초리와 기도에 대한 불편한 소리를 들게 되며, 나 자신도 식전기도에 부담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을 이루어지고 할 때, 하나님을 모르고 대적하는 세상의 경우는 그 방향이 바꿔야 하므로 엄청난 부딪힘과 어려움, 그리고 힘듦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회개’라고 말합니다. 회개는 죄악과 멸망으로 가는 우리의 일상과 환경을 주님의 뜻과 방향에 맞추는 엄청난 시도입니다. 430년의 세상의 습성과 노예로서의 관성을 바꾸려하는데, 아무 일도 없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수 있습니다. 골절로 인해서 깁스를 몇 개월했다가 풀어도 팔다리가 온전히 움직이지 않는데, 하물며 이스라엘 백성과 바로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경건을 연습을 통해(딤전 4:7~8)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주님의 뜻과 방향에 맞추어야 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행 4:18), 이스라엘의 번영을 두려워서 억제하려는 바로(출1:8~9),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바로는(출5:2) 모세와 아론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반기로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국가의 노동력인 60만 명이 빠져나가는 일에 대해서 순순히, 호락호락 허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마치 십일조나 헌금의 부담감을 가진 교인에게 재산의 1/10을 헌금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금 모세와 아론의 요구가 바로에게는 얼마나 황당하고, 무례한지를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금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바로에게 없는 유일한 한 가지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반대로 세상의 것이 하나도 없지만 모세와 아론에게 있는 유일한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보약을 먹을 때, 명현반응이라는 것을 압니다. 장기간에 걸쳐 나빠진 건강이 호전되면서 나타나는 반응으로 이 반응이 강할수록 치료효과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이 될 때 명현반응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핍박과 고난으로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아직도 미숙하며, 하나님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신앙인들에게 23절 모세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으로 고난을 겪고, 역경으로 마음이 어려운 이들에게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게하는지의 실마리를 가르쳐 줍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는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지, 미사어구와 논리로 무장한 아름다운 글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절규이며, 때로는 눈물이고, 때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진정한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기도를 가르치며, 올바른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당신의 계획, 약속,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과정은 끝이 아닙니다. 눈앞의 어려움에 머물지 않고 헛된 세상에서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허락하시고, 보게 하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믿음이 적은 우리들은 당신의 말씀에 기뻐하고 감사하다가고, 눈앞에 어려움에 낙망하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주신 말씀과 기쁨의 날개는 결코 우리를 떨어뜨리시지 않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자꾸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더 나빠지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주셔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동산에 도착하게 하여주옵소서. 고난과 역경보다 크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중보기도

적은 믿음으로 고난과 역경으로 흔들리는 이들이 기도로 승리할 수 있도록
고난과 역경을 겪는 이들에게 이 고난과 역경이 없어지고, 극복될 수 있도록
무거운 짐으로 평강이 없는 이들에게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