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능력, 죽이는 능력

출 7:14~ 25
2022-07-05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24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25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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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면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도 바로는 이 일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발길을 돌려서 궁궐로 들어갔다.(22~23절, 새번역)

살리는 능력, 죽이는 능력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고, 아론을 통해서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고, 아론이 나일강을 치자 물이 피로 변합니다. 그러자 물고기가 죽고, 강물에서 악취가 나며, 애굽사람들은 마실 수 없어서 괴로워합니다.

나일강은 애굽에게 생명의 젖줄입니다. 이것이 있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나일강이 신이었고, 우상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악함과 완강함을 보시고 재앙을 내리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애굽의 요술사들입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벌하시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경고하시기 위해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이 일을 행하셨지만, 애굽의 요술사들은 무엇 때문에 물을 피로 바꾼 걸까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진정한 능력이 있다면 피로 변한 물을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는 것이 이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벌하는 것을 더 하게 합니다. 더 힘들고 괴롭게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의 특징과도 같습니다. 이단과 사이비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능력은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자기 배만 불리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다입니다. 예수님을 물과 피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교주는 능력과 재능으로 자기만을 위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살리고 회복하는지, 아니면 우리가 가진 능력과 재능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지를 봐야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교회의 덕,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우리는 점검해야 합니다.(고후 10:4~6)

백성을 위해야 하는 왕은 이 엄청난 일에도 관심을 가지기 않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회심리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곡을 하여도 자신들의 논리에만 빠져있던 바리새인을 질책하던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마11:17)

우리가 가진 능력, 재능, 재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많이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하고,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하고 멸망시킨다면 우리에게 있는 소유는 축복이 저주입니다.

없어 보이고, 모양이 빠져도 우리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교회의 덕을 세우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사람을 붙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에게 가진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기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가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소유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주셔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하옵소서. 함께 하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알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소유에 집착해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움켜쥐느라 힘든 인생을 사는 이들이 펴고, 나누는 행복의 삶을 맛볼 수 있도록
막연한 결핍으로 두려움에 있는 이들이 예수님의 참된 평강을 경험하여 자유를 얻도록
오늘 있는 성(聖)노회 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