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신앙관,

닥치는 불행

삿 11:29~ 40
2022-09-25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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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다는 여호와께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암몬 사람들을 물리치도록 해 주시면, 내가 암몬 족속으로부터 안전하게 돌아올 때 나를 반기러 내 집 문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30~ 31절, 우리말 성경)

그릇된 신앙관, 닥치는 불행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승리에만 감사하기 보다는 아프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많은 본문이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성경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하면 잘못한 것을, 예수님조차도 모르시면 모르신다는 것을 그대로 나타냅니다.(마 24:36) 가장 중요한 부활에 대해서도 덧붙이거나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장 큰 매력이며, 거룩성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입다는 엄청난 서원을 합니다. 인신공양입니다. 그것도 번제로 드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은, 도리어 대적 암몬과 모압인들이 행하던 몰렉에서 바치던 행위를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사시대가 얼마나 많은 것들이 무너지고, 피폐해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사사라고 할지라도 그의 신앙관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부족한 인간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신실하고, 열심인 사람들에게 사탄은 결코 그들의 신실함과 열심을 막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의 신앙관을 살짝 오염시키거나, 삐뚤어지게 만듭니다. 열심인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지 말라고 한다면 그가 안 믿겠습니까? 도리어 그는 기뻐하고 순교를 각오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입다처럼 그릇된 것이 믿음이고, 신앙이라는 생각이 심어 놓으면 그는 그대로 합니다. 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그릇되거나, 오염된 것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임하셔서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의 서원에 대해서는 침묵하시고 계십니다. 역사에는, 지나간 일에는 만약이 있을 수 없지만 입다가 베드로처럼(요21:7), 다윗처럼(삼하 12:20~21) 구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입다는 자기가 입밖으로 내놓은 것을 그대로 행합니다. 잘못된 것을 무조건 실행하려하는 것은 신실함이 아닙니다.

그릇된 신앙과 믿음은 공동체와 사람들에게 많은 해를 끼칩니다. 그러나 더 큰 영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아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릇된 신앙관에서는 나오는 열심들은 결국 하나님의 종들과 교회 공동체에 막대한 해(害)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침묵은 침묵이 아니라 듣지 않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께 한 서원이라 하더라도 멈추어야 하며, 서원한 그 열심을 가지고 자신의 그릇된 행함과 그릇된 맹세를 회개해야 합니다. 열심과 신실함이 그릇됨으로 오염되어 불행이 되는 가장 아픈 본문이 오늘 본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소중한 것, 귀한 것을 조건으로 거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열심히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보다 올바른 방향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입다의 열심과 헌신이 무모하고, 가족을 해치는 안타까운 일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열심과 성실이 공동체와 주님의 종들을 해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셔서, 열심과 성실이 주님께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그릇된 신앙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도록
이단과 사이비 단체들과 싸우는 이들에게 인적 자원과 영적 자원이 넘치도록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릇된 신앙으로 상처입고 손해 본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와 회복을 허락하시도록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열심히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보다 올바른 방향과 하나님의 뜻을 먼저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입다의 열심과 헌신이 무모하고, 가족을 해치는 안타까운 일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열심과 성실이 공동체와 주님의 종들을 해하는 것이 되지 않게 하셔서, 열심과 성실이 주님께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그릇된 신앙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도록
이단과 사이비 단체들과 싸우는 이들에게 인적 자원과 영적 자원이 넘치도록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릇된 신앙으로 상처입고 손해 본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위로와 회복을 허락하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