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목적을

잃어버리는 이유

욥 18:1~ 21
2022-11-27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짐승 취급을 받고 자네 눈에 그렇게 비열하다고 여겨지는 것인가? 분노로 스스로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자여, 자네가 땅을 황무지로 만들겠는가? 바위를 그 자리에서 옮기자는 것인가?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그 불꽃은 타오르지 않을 걸세.(3~5절, 우리말 성경)

위로가 목적을 잃어버리는 이유

욥의 대답을 들을 빌닷은 격앙된 언조로 욥이 자신들을 짐승으로 보고, 부정하고 비열하게 보며, 스스로를 분노 때문에 갈기 갈기 자신을 찢어 놓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3~5절) 친구의 재앙을 보고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요? 수아사람 빌닷은 이제 욥만을 말하지 않고, 다른 친구인 엘리바스와 소발에게도 말장난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합니다.(2절)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러 왔습니다.(욥1:12) 그러나 함께하고 대화를 나눌수록 그들의 대화는 점점 논쟁이 되고, 힘들어하고 있는 욥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도리어 재난을 가중시키는 비난이 됩니다. 이제는 욥이 자신들을 짐승과 비열한자로 표현하고 있으며, 빌닷 또한 악인은 필연적으로 그 빛이 꺼지게 된다고 말하므로, 욥을 악인으로 단정짓기 시작합니다.(5절)

위로와 조언, 충고들이 갈등과 분쟁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삶에서 종종 겪게 됩니다. 자녀를 위해서,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다 잘되자고 하는 말들인데, 결과는 분쟁과 반목이 생기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서로가 사건과 상황, 만남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각각 사람들에게는 외부에서 오는 정보와 환경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사고방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훨씬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스키마Schema)으로 개개인 각자가 생각하고 처리하고 행동합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처지와 상황을 섣부르게 단정짓거나,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생각하거나, 무조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위로하기 시작할 때 위로는 위로가 아니라 비난이 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위로와 도움이 아닌 힘들고 어려움을 주게 됩니다.

그 사람의 고통과 어려움보다 내가 가진 생각과 방식이 앞서게 될 때, 그때부터는 위로가 아닌 주장과 논쟁으로 변질되게 됩니다. 성경에서 이런 때의 방법을 찾는다면 바로 덕을 세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고전14:11)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 먼저이지 내가 생각하는 주장과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지식과 방식을 아닌 아이에게 맞추어 지는 것처럼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도 우리가 다가갈 때는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질 때 그 위로는 힘을 얻고 상대에게 도움이 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틀릴 수 있고, 우리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겸손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도 넘어질 수 있고, 실수 할 수 있고, 잘못 갈 수 있기에 다른 이의 넘어짐과 실수, 그리고 잘못을 용서하고, 위로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다른 이를 품을 때 우리를 품으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마음이 상한 자에게 주님처럼 함께 하는 이는 이가 우리가 되게 하소서.
타인에 조언하고 위로하려는 이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나아가게 하소서.
조언과 위로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고난당하신 주님으로 위로 받게 하소서.
실수와 실패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반성하고, 다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