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욥 22:1~20
2022-07-05

1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이르되
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4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8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9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10 그러므로 올무들이 너를 둘러 있고 두려움이 갑자기 너를 엄습하며
11 어둠이 너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고 홍수가 너를 덮느니라
12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보라 우두머리 별이 얼마나 높은가
13 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 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15 네가 악인이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
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겨 버렸고 그들의 터는 강물로 말미암아 함몰되었느니라
17 그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하며 또 말하기를 전능자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으랴 하였으나
18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그들의 집에 채우셨느니라 악인의 계획은 나에게서 머니라
19 의인은 보고 기뻐하고 죄 없는 자는 그들을 비웃기를
20 우리의 원수가 망하였고 그들의 남은 것을 불이 삼켰느니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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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그분을 경외했기 때문에 그분이 꾸짖으셨단 말인가? 그래서 자네를 심판하신다는 건가? 자네 악함이 큰 것 아닌가? 자네 죄악이 끝이 없는 것 아닌가?(4~5절, 우리말 성경)

확실한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욥의 대답을 들은 엘리바스는 스스로를 의롭다고 하는 욥을 향해 욥의 죄악들을 나열합니다.(6~9절) 이제껏 욥이 가졌던 경건과 신앙을 인정해 줬던 엘리바스였지만 너의 경건함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죄악이 크고, 이것이 너를 재앙 가운데 있게 했다고 단정하며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욥의 편이 됩니다. 단지 욥의 의견이 맞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욥기를 읽고 있었기에 욥의 사정과 상황, 이렇게 된 연유를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황을 모른다면 우리도 열의에 차서 경건한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말에 동조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더 앞장서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은 경건하고, 바르며, 욥의 말을 거칠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가 말하는 욥에 대한 주장들은 욥의 삶과는 상관없는 ‘카더라’, ‘누가 그러더라’, ‘그럴 것이다’들의 추측이요, 추론밖에는 없습니다. 악은 몰고 가고 몰아갑니다. 악의 거대한 회오리는 진실에 상관없이 자기들의 확신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엮어갑니다. 우리가 아는 욥과 친구였던 엘리바스가 아는 욥은 다릅니다. 이제 욥은 이제 죄인이요, 악행을 저지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됩니다. 엘리바스가 만들어낸 욥으로 인해 재앙과 고난 가운데 버티는 경건한 욥은 더 우겨쌈을 당하게(고후4:8) 되고 더욱 어렵고 힘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죄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성모독은 투석형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은 로마가 역적을 죽이는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사탄은 자기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확신과 신념에 이용해서 엄청난 악을 행하게 하며, 군중을 부추깁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좋고 멀리서 친구를 위로하러 오는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13~14절)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가 하나님도 인정하실 만큼 악에서 떠나있던 욥을 죄인이요, 악인으로 규정하게 된 것은 ‘고난과 재앙은 악인들에게 내리시는 벌’이라는 강한 확신, 분명한 생각이 그를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그는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확실하고 당연하다는 생각은 우리가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는 것조차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의 위험성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확실한 것은 우리의 경험과 생각, 영향력 있는 사람과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뿐입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진리는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황과 상황이 당연하더라더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한번 더 하나님께 묻습니다. 기도합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엘리바스에게 믿음을 버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닌 도리어 그의 믿음을 배워야할지도 모릅니다.(마5:20) 그러나 우리의 열심과 확신이 그릇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확신을 갖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만, 그릇된 확신보다 더 무섭고, 잘못된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삿21:25)

오늘의 기도

우리의 확신과 잘 안다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오만하게 하고, 자만심에 가득 찰 수 있는지를 보여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의 잘 안다고 하는 것으로, 우리의 확신으로 말미암아 상처 입었던 자들을 돌아보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사실과 다른 확신으로 피해를 입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있게 하소서.
자신의 지식과 확신이 하나님보다 높아진 이들이 속히 그 확신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열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자들이 주님의 방향에 맞추어 나가는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열심을 가지고 선을 행하다가 지치고 낙담한 이들에게 주님의 힘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