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한 대로만

갚으실까?

욥 34:1~ 20
2022-09-26

1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14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15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16 만일 네가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내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17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18 그는 왕에게라도 무용지물이라 하시며 지도자들에게라도 악하다 하시며
19 고관을 외모로 대하지 아니하시며 가난한 자들 앞에서 부자의 낯을 세워주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라
20 그들은 한밤중에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사라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거함을 당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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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각이 있는 분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악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거리가 멀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전능하신 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분은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고 사람이 살아온 대로 대하십니다.(10~11절, 우리말 성경)

우리가 행한 대로만 갚으실까?

엘리후의 주장은 계속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자고 말합니다. 자신은 의롭다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부인하셨다고 말하면서 허물이 없지만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6절) 욥을 악인과 한 무리로 봅니다. 엘리후의 말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당위를 말하기에 정말 귀한 말씀이지만, 이것이 욥에게서만큼은 틀리다는 것이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분입니다.(11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행한 대로만 보응하시는 분일까요? 엘리후는 공정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옳은 것을 굳게 잡고, 욥과 친구들 사이에서 옳음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후 또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있음을 모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겐 분명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연인이든, 부모든, 할아버지 할머니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은 행한 대로만 보지 않습니다. 행동에 자신의 사랑을 포함해서 봅니다. 잘못하는 것도 예뻐 보이고, 버릇없는 것도 매력이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한 행동들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부모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고도 미안하고, 더 주어야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정의가 굽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의 편이 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이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롬5:8)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살리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잘못할 때는 우리를 혼내시고, 냉정하게 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새의 두 날개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시지만, 그 행한 것을 당신이 짊어지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재앙에 대한 하소연을 하나님의 정의와 당위에 맞추어 말하면서 욥을 악인으로 몰아갑니다. 엘리후는 욥에 대한 사랑을 잊었기에 하나님의 욥에 대한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행위를 아시는 주님! 행위의 열매를 먹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악의 권세에서 피할 수도 없고, 도망하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죄악된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정의를 더욱 깊게 알게 하옵소서. 주님의 십자가가 왜 사랑이며 정의인지를 알게 하셔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 깊게 거하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그 크신 사랑과 정의를 알게 하소서.
사랑에 빠진 이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서 더 깊은 사랑을 하게하소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소유하고, 정죄하는 이들이 참된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정의를 외치며 마음이 차가워진 이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정의가 복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