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악인을 그냥 두실까?

욥 34:21~ 37
2022-05-17

21 그는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22 행악자는 숨을 만한 흑암이나 사망의 그늘이 없느니라
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24 세력 있는 자를 조사할 것 없이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워 그를 대신하게 하시느니라
25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엎어 흩으시는도다
26 그들을 악한 자로 여겨 사람의 눈 앞에서 치심은
27 그들이 그를 떠나고 그의 모든 길을 깨달아 알지 못함이라
28 그들이 이와 같이 하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상달하게 하며 빈궁한 사람의 부르짖음이 그에게 들리게 하느니라
29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누가 그를 정죄하며 그가 얼굴을 가리신다면 누가 그를 뵈올 수 있으랴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30 이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 그대가 하나님께 아뢰기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나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하였는가
33 하나님께서 그대가 거절한다고 하여 그대의 뜻대로 속전을 치르시겠느냐 그러면 그대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그대는 아는 대로 말하라
34 슬기로운 자와 내 말을 듣는 지혜 있는 사람은 반드시 내게 말하기를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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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악인들을 처벌하여 치시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울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울부짖음을 들으십니다.(26~28절, 쉬운 성경)

하나님은 왜 악인을 그냥 두실까?

엘리후는 자신이 믿고 깨달은 바를 아주 단호하게 전합니다. 사람을 주목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악자들은 숨을 곳이 없습니다.(21절) 그래서 예수님 믿고 죄짓고 잘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움에 떨거나, 하나님을 떠나 숨어삽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 밤사이에 악인들을 뒤집어 흩으실 수도 있습니다.(25절) 그러나 엘리후에게는 갑자기 날벼락을 당한 욥에 대한 비난과 정죄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서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회개하지 않는 욥을 지혜와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합니다.(35절) 더나가 욥은 악인과 같으므로 끝까지 시험을 받기를 원한다는 저주를 퍼붓습니다.(36절) 욥의 재앙, 시험이 어떤 것인지 엘리후는 몰랐을까요? 엘리후가 이런 가차 없는 말들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하는 말이 바로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답에는 사랑이 없고, 긍휼이 없습니다. 맞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할 때는 꼭 한 가지가 더 첨부되어야 합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회개에 대한 모범이 엘리후가 말한 31~32절에 나옵니다. 아무리 내가 하는 말이 옳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망해야 하고,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옳음과 정의는 무엇일까요? 이런 엘리후와 같은 사고는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의 탐욕과 함께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은 마녀로 만들고, 예수님의 이름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는 오욕(汚辱)을 남겼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요, 심지어는 천사의 말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예언의 은사와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고전13:1~2)

아무리 좋은 목적도 사랑이 없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게 되고, 빨리 가기 위해서 사랑을 버린다면 그 목적지에는 상처와 아픔만이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정의보다도 사랑이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냥 두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악인이 의인들보다 더 잘살게 그냥 두시는 이유는 바로 그들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계속 잘못하던 사람도 지금은 잘 할 수 있습니다. 계속 잘하던 사람이 그릇 행할 수도 있습니다. 잘살던 사람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망했던 사람이 잘 살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망하고, 실패하고, 죄지은 사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지만, 그런 사람을 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와 긍휼이 먼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종용하거나 강요하게 될 때 엘리후처럼 욥을 위하고 친구들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욥을 저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잘못하고 죄지은 사람에게 믿는 사람이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긍휼과 용서입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6:36, 헤른후트)

오늘의 기도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 당신께서는 우리를 힘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와 악을 위해 십자가에 지심으로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여전히 내 의와 내 생각으로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상처 주는 우리의 행실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지금도 중보해 주시는 예수님의 그 큰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보게 하옵소서.

중보기도

타인의 부족함을 보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로 볼 수 있게 하소서.
타인의 잘못과 죄악과 부정으로 분노하는 이들이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자유롭게 하소서.
용서를 머리로는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용서와 긍휼이 가득하게 하소서.
자신의 옳음과 정의로 가득한 세상에 예수님의 마음과 향기가 퍼져 나가게 하옵소서.
오늘 드려질 수요예배에 위해 믿는 자의 정성과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