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돌이키는 지혜

눅 15:11~ 32
2022-09-26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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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 말했다. ‘내 아버지의 품꾼들에게는 양식이 풍족하여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가 말해야겠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17~18절, 쉬운 성경)

스스로 돌이키는 지혜

탕자의 비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잘 전해주는 아주 소중한 말씀입니다. 말을 잘 듣고 모범적인 큰 아들과 인간 말종과 같은 행동으로 자신의 분깃을 가지고 탕진한 두 아들을 통해서 우리의 하나님과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일깨우며,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줍니다.

본문에 나오는 작은 아들은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아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작은 아들은 인간적인 도리를 저버리고, 율법이 이야기는 도리를 다 어기지만 개인적으로 그 돈들을 형이 말하는 것처럼 창녀와 함께 삼겨 버린 행동을 했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30절) 도리와 말씀에 벗어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받는 유산을 요구하고, 팔 수 없는 토지를 팔아서 재산을 모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망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가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아 모은 재산 다 잃고 실패한 사람이지만 이것을 다 향락과 유흥에 사용했다고만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세리와 창기를 죄인으로 낙인 찍는 것과 같은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허랑방탕‘이라는 원어의 의미에는 함부로 마구 사용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서 그의 행동은 부모님과 율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사람으로 보는 것이 우리가 탕자를 더 우리 자신에게 비쳐 볼 수가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이 무시되고 결과와 성취가 인정받는 시대에 우리는 작은 아들의 방식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잘만 되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시작과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하며, 내가 무엇 때문에 어떤 행동, 일을 하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뜻이 좋고, 동기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무모하고,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동기를 가지고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을 했지만 결국 망하고, 실패하고 맙니다. 그의 이런 악한 동기와 실패는 그를 최악의 상황인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도 못먹는 신세가 되게 합니다.(16절)

여기에 우리가 붙잡고, 우리가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태도가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 돌이켜’입니다. 동기가 악했건, 그 결과가 어찌 되었건 ‘스스로 돌이킬’있는 태도가 신앙의 기본이요, 시작이며,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있던 모범적인 큰 아들은 바리새인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동생을 정죄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런 큰 아들에게 아버지는 ‘스스로 돌이킬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전합니다. ‘스스로 돌이키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없이는 신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돌이킬 때, 회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떠나버린 자리, 잃어버린 마음, 깨져버린 관계, 잘못간 인생들과 실패와 절망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큰 아들처럼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당신의 평화가 없습니다. 주님! 작은 아들처럼 언제나 내가 옳은 것처럼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양, 이꼴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돌아보는 지혜가 있게 하옵소서. 회개의 그 깊은 의미를 되새기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초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은 영원한 우리의 부모님이시며, 주님 품은 풍성하고 풍족하나이다.

중보기도

시작이 그릇되어 가족들과 공동체와 갈등하는 이들이 스스로 돌이키게 하옵소서.
실패하고, 망해 버려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주님을 찾고 돌아오게 하옵소서.
성실과 책임으로 잘 살고 있는 이들이 마음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방황하는 이들이 언제나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