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삼상 6:13~ 21
2023-03-31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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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벧세메스 백성 중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쳐 칠십 명 을 죽이셨습니다. 벧세메스 백성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그토록 무섭게 벌주시는 것을 보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이 여호와의 궤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19~20절, 쉬운 성경)

하나님은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궤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릅니다. 사람들이 기뻐하며 수레의 나무를 패고 암소를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들어다 보았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기럇여아림으로 사람을 보네 궤를 옮겨가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이요, 능력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영적인 타락과 부패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지 못하는 형식으로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거룩함을 나타내셔서 벧세메스로 당신의 궤가 돌아오게 하십니다. 전쟁의 패배와 성궤를 빼앗긴 것에 대해서 낙담하고 있던 벧세메스의 거민들은 기뻐하며 여호와의 궤의 귀환을 기뻐하고 승리를 기뻐하면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벧세메스의 주민들은 한순간에 많은 사람이 죽고, 여호와의 궤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언약궤를 들어다보다가 어떤 사본에는 오만 칠십 명이, 어떤 사본에는 칠십 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언약궤를 들어다보는 것이 그렇게 큰 죄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을 구경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죄에 대한 단어가 20개정도 나옵니다. 그중에 동사 파샤(פָּשַׁע)는 선을 넘는다, 넘어서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신앙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으며 그 선을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언약궤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거룩하게 여겨야 하는 것임을 벧세메스 사람들은 간과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기준은 세상이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창조질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셨고, 정하십니다. 그 선을 넘어서는 것은 정말 위험하고,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설마’가 사람을 잡는 것처럼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거나,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말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사탄의 계략입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을 없습니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은혜를 받고 믿음이 좋아도, 아무리 친해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지켜야 할 선(線)이 있습니다. 신앙은 구경거리나 심심풀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킬 것을 지키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구경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보게 됩니다. 지금도 세상의 잣대와 체면과 욕심의 가면을 쓰고, 믿음이 있는 척, 교양이 있는 척, 다른 이보다 더 잘 났다고 생각하며 슬쩍 슬쩍 훔쳐보는 믿음과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모시고, 섬기는 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중보기도

오랜 세월의 신앙생활로 성의가 없고 형식만 남은 이들이 정성을 드리게 하옵소서.
알지 못해서 선을 넘고, 죄를 범하는 이들이 깨닫고 온전히 서게 하옵소서.
형식을 아는 이들이 성의를 다하고 정성을 담아서 형식에 담긴 축복을 이루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