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함과 낭비의 기준

최종환 담임목사 (요한복음 12;1~9)
2023-03-26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요한복음 12;1~9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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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 합시다.

거룩함과 낭비의 기준

12:1~9

 

사순절의 막바지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 고난주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마지막 한 주간을 생각하며, 우리교회도 집중새벽예배로 드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앞두고 사랑하는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의 집에 가셔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로 닦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 거룩과 낭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우리를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그만큼 고맙고, 감사했던 것입니다.(3)

오늘 본문에서 가룟 유다가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서 나무라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5절) 마리아의 행동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우리의 믿음과 우리가 은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물질이 하나님보다 더 귀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죽은 오라버니를 살려주신 것과 자신들에게 귀한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해서 마리아는 아깝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은 값으로 매길 수 없기에 아무것도 안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사람은 고마운 만큼 물질, 봉사, 섬김, 표현을 분에 넘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함부로 말하면 모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7)

우리는 오늘의 행위에서 나드 한 근이라는 비싼 향유에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가룟 유다처럼 물질에 효용성도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위로 받고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엿새전(1절)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몰랐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때 마리아는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물질과 최고의 행위를 예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낭비는 시간이나 재물 따위를 헛되이 헤프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방식이나 객관적인 방식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행위는 결코 낭비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거룩’은 세속적인 사고와 기준, 그리고 하나님이 제외된 비신앙적인 것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고, 드릴 수 있는 것이 거룩이기에 오늘 마리아의 헌신을 낭비로 생각하는 관점은 하나님보다는 물질에 대한 마음으로, 예수님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이 드리고, 적게 드리는 것에 대하여(21:2)

과부의 두 렙돈과 마리아의 나드 한 근과 어떤 것이 더 귀하고 효용가치가 있을까요? 세상의 관점에서는 나드 한 근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관점, 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시50:8~15)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정성,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드리는 것은 세상과 개인의 기준과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즉 ‘거룩’과 ‘낭비’의 가장 큰 구별과 기준이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가?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가 기준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