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담임목사 (누가복음 7:11~17)
2022-01-09 | 주일 1부 예배

성서본문: 누가복음 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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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끝이 시작이 되는 만남

눅 7:11~ 17

 

사람들에겐 해도 안 되는 상황이 있고, 이미 손을 쓸 수 없이 끝나 버린 상황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미 끝나버린 상황, 구체적으로는 죽어버린 아들이 나옵니다. 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는 어머니와 그를 슬퍼하는 성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모두에게 절망이요, 끝인 상황에서 우리는 또 다른 시작,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에는 어찌 할 수 없는 절망이 있습니다.(12절)

 

참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에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것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이들은 소외되고, 모든 생계와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과부에게 하나 있던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까! 나인성의 많은 사람들이 위로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같은 일들이 당하고, 절망과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하지만 그 이상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장례를 함께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며, 과부의 아들 장례식만큼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절망과 한계를 만나는 분들이 있다면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13절)

 

예수님께서 오늘 나인성 과부를 만나시는 것은 계획되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이들과 함께 하십니다. 장례행렬을 만나시는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망하는 것, 악인이 죽는 것조차 기뻐하지 않는 분이신데(겔33:11) 안타까운 죽음을 보시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드리고,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힘들어 하고, 절망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의 선물에는 우리의 공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절망적인 상황과 우리의 어려움을 주님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에겐 소망이 솟습니다.

 

끝이 다시 시작이 됩니다.(15절)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은 일시적인 충동이 아닙니다. 깊은 내면으로 동정하고, 함께 공감하는 일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사람이 있는 것만도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머무는 분이 아니십니다.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는 관에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관에다 손을 대시고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그 청년을 그 어머니에게 주십니다. 절망이요, 끝이었던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소망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게 됩니다.

 

자식의 장례, 안타까운 장례를 치른 사람이 한두 명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인성 과부의 장례에는 다른 장례에는 없는 것이 딱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절망과 포기가 우리 앞에 있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 모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모든 절망과 어려움에서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다른 이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하고 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