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담임목사 (룻기1:1~18)
2021-10-31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룻기1:1~18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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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믿는 자가 있어야 할 곳

룻 1:1~ 18

오늘 성경은 사사시대 믿음의 백성들이었던 한 가족이 흉년으로 세상의 양식을 따라 떠났다가(삿 21:25) 큰 어려움과 낭패를 겪고 다시 자신들의 터전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서문입니다. 함께 떠났던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이제 남은 두 며느리를 보면서, 우리가 있어야 할 곳, 우리가 따라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만을 따르다가(1절, 5절)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세상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이 되고, 기반이 되며, 가정과 공동체의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 사람에게도 세상은 아주 중요하게 인식되고, 세상의 것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해야 합니다.(창3:17) 그러다 보니 아차 하면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보고, 세상의 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흉년, 세상의 먹을 것에 궁핍해지자 터전을 버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 회중과는 화합할 수 없는 이방신을 섬기는 족속이었지만 그들의 땅은 비옥하며, 농사를 지었기에 살기에 좋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압으로의 이주는 그 가정에게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사 53:6) 세상의 것이 좋아 보인다고 따른다면 결국 세상의 것 이상은 얻을 수 없으며,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는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자가 아닌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히11:16)

하나님 안에서도 양식만을 택하는 자는 슬퍼하고 낙망합니다(6절)

이제 혼자 남은 하나님의 백성, 나오미는 다시 자신의 삶의 터전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의 돌아가고자 하는 근거는 바로 ‘양식’이었습니다. 양식을 위해, 세상의 것만을 생각하게 되는 나오미는 이별을 생각하며, 주어진 여건을 생각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셨지만 나오미는 여호와의 돌보심보다는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계속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 양식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나오미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슬퍼하고, 낙담하고, 포기하고, 이별합니다.(마4:4)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 안에서도 양식만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양식이 있어도 슬픔과 낙망이 있고 소망이 없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룻은 하나님을 붙잡습니다.(16~17절)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간절한 말에 오르바는 떠나고 맙니다. 그러나 모압의 여인인 룻은 절망 중에, 가진 것 없는 어머니를 붙쫓으며 고백을 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내가 죽은 일 이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라는 엄청난 고백을 합니다. 룻이 시댁에서 10년 동안 본 것은 절망이요,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붙잡고, 보잘 것 없는 자기 시어머니를 붙잡습니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는 나오미와 룻의 모습을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양식을 붙잡고, 하나님을 붙잡는 차이입니다. 이 믿음의 선택은 놀라운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선사합니다. 믿음을 선택하고, 믿음의 백성을 따른 룻은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모압의 젊은 과부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족보에(마1:5) 들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일을 할 때 역사하며 하나님께서는 복내려 주십니다. 믿음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보기에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곳에 있고, 따르는 것입니다.(창 12: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