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담임목사 (야고보서 2:14~26)
2022-10-30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야고보서 2:14~26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ㄷ)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말씀요약

믿음과 행함을 하나입니다.

약 2:14~ 26

 

오늘은 1517년 10월31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며 부패하고 타락했던 로마 교회의 갱신을 외친, 신앙의 개혁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의 불꽃과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묘연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던 야고보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을 쇄신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17절)

 

믿음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죽음을 살리고, 병든 자를 살리며, 죄악에서 이길 힘을 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시대를 지내면서 믿음이 힘이 없고, 능력이 없고, 헛것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20절) 믿음을 믿음답게 하는 것, 믿음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행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을 믿음이 알려주는데, 행하지 않고 말만 할 때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상대에게도 아무런 유익과 심지어는 구원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참된 믿음은 우리에게 행동을 강요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행동을 하게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나가는 행동들은 우리의 믿음을 고양시키고 살아있게 합니다. 따라서 믿음과 행동은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이며, 보완적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알기만 하는 믿음은 두려움을 줍니다.(19절)

 

믿음과 행동은 육체와 영혼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설명을 위해서 육체와 영혼은 따로 구분해서 말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어디까지 육체인지, 어디까지가 영혼인지, 명료하게 구분할 수 없지만 영혼과 육체 함께 할 때 온전한 인간이요, 온전한 생명체로 있게 됩니다. 주의 동생 야고보는 그 비유로 ‘귀신’을 들어 설명하며 귀신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귀신에게는 행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체가 없으니까요. 귀신은 예배드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넘어서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두려움에 떤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가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는 말로가 아니라 그 행동에서 믿음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의 믿음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 자신은 믿음의 참된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가 외친 행동, 루터가 외친 믿음

 

야고보의 삶의 자리는 드러내면 죽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의 행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시대는 신앙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척해야 했고, 믿음보다도 잘 보여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저나 성도님들에겐 어떤 것이 필요한가요? 믿음에 대한 고백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행동입니까? 행동을 통한 믿음의 회복과 믿음을 가진 행동은 루터가 반박문을 붙였던 믿음의 행동처럼 우리의 영혼과 공동체를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