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화목을 이루는 사람

최종환 담임목사 (사도행전 11 : 19~26)
2023-08-13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사도행전 11 : 19~26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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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복음과 화목을 이루는 사람

행 11:19~26

오늘 본문은 사람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믿음의 선배인 바나바의 사역을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이루실 때, 그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손, 당신의 발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셨고, 이런 기록을 담아 놓은 성경이 사도행전입니다. 바나바의 모습을 통해서 복음과 화목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옳다고 적을 만드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25절)

바나바의 중요한 역할 중에서 하나가 있다면 바로 사울이었던 바울을 교회공동체에서 활동하고, 그에게 길을 터준 사람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고, 27권의 신약성경 13편의 성경을 저술한 사람은 처음부터 교회공동체에 순탄하게 안착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지지하고,(7:58)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까지 가는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9:1~2)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개종했지만 교회는 그를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9:26)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분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사람의 시작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26절)

사람들은 스스로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주고, 무엇인가를 할 때를 기다려주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갓 태어난 아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는 장면에서도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3:7) 바로 잡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안내, 누군가의 권유, 누군가의 격려, 누군가의 위로, 누군가의 협력이 없다면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공동체도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을 다소까지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와서 세우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권위에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사람과 교회를 세웁니다(22,30절)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워지면서 흩어진 이들을 통해 기독교의 거점 도시가 되는 곳은 바로 수리아의 안디옥입니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을 처음 듣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바나바와 사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갖지 않습니다. 안디옥에 온 것도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통해서 온 것이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보면서 부조를 안디옥교회에 보내게 됩니다. 이들이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장거리 여행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바나바는 순종하고 그 일을 감당합니다. 

복음의 확장과 화목케 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발을 가진 자인 바나바와 같은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말합니다. 교회에는 일꾼이 있고, 말꾼이 있다고 바나바는 바울된 사울의 과거와 상처, 아픔을 품어주고, 교회의 권위에 순종하는 일꾼이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