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 있을까?

최종환 목사 (에스겔 37:1~14(구약1208면))
2020-03-29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에스겔 37:1~14(구약1208면)

1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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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살 수 있을까?
겔 37:1~14

교회로 내려오는 길에 개나리를 보았습니다. 초라하다는 느낌이 오면서, 참 볼품없이라는 학개서의 말씀(2:3)처럼 보잘것없이 피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같이 않다는 고사성어가 많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가만히 그 개나리를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에 위로와 희망이 있음을 봅니다. 성도님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하늘 한번보시고, 작게 피어있는 꽃들을 보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찬양하며 이 위기를 견디고 극복하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절망이 있습니다. (1절)
오늘 에스겔의 말씀의 시작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시작합니다. 전능하시고 못 하실게 없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에스겔의 손을 이끄신 곳은 바로 마른 뼈의 꼴짜기 였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왜 우리를 좋은 곳으로, 꽃길로 보내시지 않고, 마른 뼈가 한두개만 있어도 흉물스러울텐데 거기로 보내셨을까요? 바로 이것이 현실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한 이후 인간에게는 죄악이 관영하며, 이 죄악은 우리에게 많은 암담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말랐다”는 이 단어는 실망되고, 시들고, 수치를 당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런 상황을 보게 하는 것이죠.
옛날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정적 일 수 있지만,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절망스러운, 수치스러운, 고통스러운 우리의 상황을 모른 채 하게만 한다면 그것은 아편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종교성은 이단과 사이비가 될 수 밖에는 없는 까닭입니다. 성도님들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를 무능력하고, 딴 세상에 가 있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으로 물들고, 병든 세상과 함께 굳건히 싸워나가게 하십니다.

살 수 있을까? (3절)
이런 암당하고, 절망스러운 현실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자문(自問)하게 됩니다.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살 수 있을까? 라고 말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살아나겠느냐? 이 상황이 극복되겠느냐? 살아 날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살 수 있을까?의 물음에서 우리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가장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까뮈의 말처럼 우리는 절망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질문이 하나님과 함께 일 때 달라집니다. 갑자기 로또를 맞는 것처럼 확 달라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사로가 일어나는 것이나,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역사도 제안하지는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아나게 하시며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해 일하는 군대가 되게 하십니다.
오늘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합니다. 이런 말씀을 선포하지만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를 못드린지가 한 달입니다. 그러나 척박한 곳에서도 봄바람에 꽃이 피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봄이 봄같지 안을지라도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은 현실에 뿌리 박은, 때때로 치열하고, 때때로는 치사하고, 때때로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우리의 현실속에서 질문해 오실 것입니다. 이 상황이 극복되겠니? 살 수 있겠니? 라고 말이죠.
이제 우리의 믿음은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은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실력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니까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