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담임목사 (사도행전 9:11~20)
2022-05-01 | 주일 1부 예배

성서본문: 사도행전 9:11~20

11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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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어린아이 같은 사울

말씀: 행 9:11~ 20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고귀함이며, 천국을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이고, 우리가 영속되어지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며, 기억하고, 생각하는 주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며,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과 자라나야 하는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어린이 같은 사울(15절)

 

사도 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고, 주의 성도들에게 많은 해를 끼쳤던 사람입니다. 사울을 축복하기를 꺼리는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당신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서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스라엘의 표현법입니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닙니다. 나이를 먹었고, 능력이 있지만 어린아이 같은 이들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짜 어른은 진리를 담고, 참된 진리로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것을 담거나, 부족해서 부모인데도 상처를 주고, 철부지같은 지도자 때문에 어려운 겪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막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핍박하던 예수를 마음에 담은 어린아이 같은 사울에게 아니니아를 시작으로 성장시키십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만 어린이가 아닙니다. 진리로 자라고,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러야 하는 우리도 어린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그릇에 담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해야 합니다.(엡4:13)

 

어린이의 양면성(13절, 왕상 3:7~10)

 

종종 우린 어린이를 예찬하면서 아이들의 좋은 것만을 봅니다. 그러나 실제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오는 것은 반갑고, 가는 것은 더 반갑다는 말처럼 어린이는 양면을 가지고 있기에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은 살리고 부족하고 그릇된 부분은 잘 훈련시키고 배우게 하며, 공급시켜서 잘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자신이 아이라고 말합니다.(왕상3:7) 어린이의 어원에 ‘어리석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좋은 것을 배우고, 잘못된 것을 고치고, 영양분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죄는 우리에게 참된 것을 배우고, 공급받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사울은 열심과 율법의 의에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3:6)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철부지 같은 신앙의 열심과 율법을 가지고 많은 이들을 해쳤습니다. 미성숙한 사람의 위험성입니다. 능력 있는 전도자였던 아볼로도 모르는 것,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행18:26) 나이를 먹었다고, 돈이 있다고, 능력이 있다고 모든 면에서 성숙하고 성장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 것은 바리새인과 같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받아들이고 배우고자 합니다. 겸손하게 부족하고, 약한 부분을 배우고, 성장시켜지 않는다면 어린이는 성숙할 수가 없습니다.

 

돕고 도움을 받는 어린이 같은 공동체(11절)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영적인 체험을 한 사울도 혼자서 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능력과 그의 위치는 이미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경지요, 자신도 자부하는 바였습니다.(빌3:5) 그가 혼자서 올바르지 않는 생각에 빠졌을 때 사람을 해치는 일도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달라졌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보내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보내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자녀에게 부모가 있고, 배우는 학생에게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는 영적지도자가 있고, 영적지도자는 성도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이처럼 주님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어지고, 보냄을 받으며, 서로를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공동체와 성도들에게 주님은 천국을 허락하십니다.(마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