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우리보다 크신 예수님

최종환 담임목사 (요한복음 9:1~14)
2023-03-19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요한복음 9:1~14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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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언제나 우리보다 크신 예수님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고치시는 놀랍고도 행복한 사건이 일어난 말씀입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의 이 놀라운 기적과 치유는 결국 예수님을 죽이고자하는 일의 시작이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엄청난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되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이 짊어지셨던 우리의 죄를 생각해 봅니다.

 

주님은 죄와 장애보다 크신 분입니다(2절)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종교인들은 혈안이 되어 있었던 때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에 걸린 사람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통쾌하게 해결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요11)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제자들입니다.

 

그 당시는 장애가 죄라고 여겨지던 때이기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조차도 죄를 규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의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장된 시야를 허락하십니다. “문제거리, 죄의 문제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죄와 문제등이 있다면 누구에게 죄를 정하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하시는 일,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며, 예수님은 모든 문제보다 크신 분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14절)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맹인인 사람을 고치신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시던 예수님께서 크지만 급하지 않은 시각장애를 왜 안식일에 고치셨을까요? 이 질문은 예수님보다 안식일이 우선하고 있고, 신앙의 기준이 안식일에 있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틀리고 위험한 것이 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종교적인 형식들을 넘어서실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진설병을 먹거나, 오늘처럼 안식일에 큰 문제를 가진 사람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자기주장과 자기생각을 우선시 하는 현대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순종할 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우리의 기준을 내려놓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준으로 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처럼 하나님이 아닌 기준, 규정을 앞세울 수 밖에 없으며 우리도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 누구의 죄, 누구의 문제들의 조건과 내 기준을 앞세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결정하며, 주님의 행하심, 우리가 해야 할 순종에 조건을 달게 될 때,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조언자가 되시고, 주님의 뜻을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우리의 선택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여러 이유로 십자가에 못 박는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의 삶으로 변질될 수가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시1:3) 구원의 복락을 가진 우리는 주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하고, 때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를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하실 일을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드릴 수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합당해 보이는 이유라 하더라도 불순종은 불순종이며, 우리의 이해되지 않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에수님을 더 깊이 사랑해기 위해서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릴 때 우리는 구원의 신비와 예수님의 사랑을 더 크고 깊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