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담임목사 (누가복음 3:7~18)
2021-12-12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누가복음 3:7~18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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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눅 3:7~ 18

 

세례요한은 이 세상에 올 때 예수님의 오실 것을 예비하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오신 분입니다.(눅1:17) 그의 주된 사역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으며, 예수님께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시는 세례를 베푸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마3:16) 따라서 오늘 외치는 세례 요한의 본문의 말씀은 주님을 만나기를 바라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십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에게 오십니다.(8절)

오늘 세례요한은 독사의 자식이라는 엄청난 독설을 내뱉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례요한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자들이 아니라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러 나온 모두가 아닌 일부를 향한 책망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세례를 받으러 나온 것이 순수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독사는 욕설만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굽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표현이기도 합니다.(사59:8) 하나님의 길을 굽게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오심은 심판이었기에 세례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행동을 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과 뜻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맞추며, 우리의 죄악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대강절의 색깔이 보라색인 것과 같은 의미이며, 세례요한의 긴급한 책망은(9절) 곧 오실 예수님을 심판이 아닌 축복으로 맞이하게 하려는 속 깊은 사랑입니다.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 회개의 행동을 가진 자들에게 주님은 임하십니다.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10,12,14)

엄청난 책망을 들은 무리들과 세리들과 군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라고 물으며 세례요한의 책망에 순종합니다. 주님께 영생의 복을 받는 자들의 반응입니다. 세례요한은 두벌 옷이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세리들은 부과된 것외에는 거두지 말고, 군인들은 힘으로 빼앗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라고 말씀합니다. 종종 우리가 믿음의 힘을 잃어버리거나, 형식화되는 가장 주된 원인은 구원과 삶을 분리시키거나, 믿음과 행동을 따로 떼어놓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직업과 역할들이 충실하게 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자기 자신의 분수와 역할을 아는 이들에게 주님을 오십니다.(15~16절)

그릇 행하는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역할과 분수를 넘어선 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구세주가 되고, 자신이 예수님보다 높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분수와 역할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세례 요한을 보면서 사람들은 심중에 요한을 그리스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며, 자신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고 말합니다. 겸손은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수와 역할을 아는 것입니다. 이런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은 오셔서 큰 은혜와 축복을 내리셨습니다.(마11:7)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고쳐먹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마땅히 행하며, 우리의 분수와 역할을 알 때, 주님의 우리 삶의 참된 구원자로 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