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합시다

최종환 담임목사 (고린도후서 5:11~17)
2023-04-02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고린도후서 5:11~17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알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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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합시다

고후 5:11~ 17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리는 종려주일, 고난주일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여정을 금요일까지 이루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리고,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우리 성광교회는 고난주간집중새벽예배를 드리며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향하고자 합니다. 또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응답을 이루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주님은 두려운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11절)

 

바다를 그림으로만 봤던 아가는 욕조에서 놀면서 바다를 그리며 놉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를 보고, 아빠는 아가에게 바다를 보여주시기로 작정하고 바닷가로 휴가를 갑니다. 실제 바다를 만난 아이는 바다의 크고, 넓고, 깊음에 놀라 두려워서 텐트에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을 아가처럼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셔서 다가오시는 주님이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함부로 생각하거나, 우습게 생각합니다.(사1:4, 갈6:7)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우리는 먼저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함부로 알게 될 때 우리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무섭게 하시고, 공포를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보다는 전능하시고, 공의에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전능자가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14절)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거져 된 것 같지만 누군가의 정성과 땀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없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위해서 전능하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죽으셨습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며, 그 사랑으로 살아갈 힘과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기셨기에 우리는 평안을 누립니다.(요16:33) 육체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세상의 만족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러나 세상의 만족과 행복에 취하다보면 세상은 죄악된 권세로 우리를 사망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왜 십자가였는지 우리가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십자가를 묵상할 때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으로 세상에서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고, 넘어져도 다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우리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하며, 사도 바울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귀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합니다.

 

세상의 관점이 아닌 예수님의 관점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17절)

 

두려울 만큼 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우리는 이제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의 관점이 아닌 그리스도의 관점,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이룰 수 있었던 신비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깊이와 사랑을 모른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눌리고, 얽매이고, 끌어갈 수밖에 없지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대신 지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고백하게 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살게 됩니다. 십자가가 빠진 예수님은 위험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믿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