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종환 담임목사 (누가복음 1:39~45)
2021-12-19 | 주일 1부 예배

성서본문: 누가복음 1:39~45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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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예수님 안에 있는 교제

눅 1: 39~ 45

 

오늘 본문은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의 행동과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무런 대가가 없고, 우리가 한 일이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큰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베들레헴 지방의 2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고,(마2:16) 주의 아버지요, 어머니인 요셉과 마리아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애굽으로 피신을 했습니다.(마2:14) 하나님의 일, 예수님의 모시는 일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헌신의 용기를 가진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와 일은 이루어 나가십니다. 성도의 교제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이 땅에 오기 위해 수태고지를 받았던 마리아가 어떻게 어려움과 무거움을 이겨나갔는지를 살펴 보면서, 주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하고 이루었는지를 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가진 자와 함께 했습니다.(39~40절)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을 바로 자신과 같은 은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있는 엘리사벳(36절)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사명을 맡은 사람들은 그 일을 유일하게 감당하기에 외롭고, 혼자만 짊어지는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짐은 누구도 맡아줄 수 없지만, 함께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과 함께 할 때, 그 짐은 기쁨과 풍성함이 됩니다. 오늘 엘리사벳을 문안하자 태중에 아이가 뛰놉니다. 기뻐합니다.(41,44절)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셔서 예수님의 길을 함께 하게 하시고, 마리아의 길에 엘리사벳을 함께 하게 하셔서 기뻐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길, 우리가 가야할 길을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응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일에 헌신된 사람이 성도들이며, 이렇게 성도들이 함께 하는 것을 성도의 교제라 말합니다.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하며 귀중한 것인지를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교제를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합니다.(48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때때로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감이 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또 왜 내게는 안주시지, 왜 저 사람이지 생각해 보지만 결국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만 모를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마리아의 행동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에 감탄하게 됩니다. 처녀가 잉태하였습니다. 정혼한 약혼자가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개인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요, 어린 처녀에게 가장 힘든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모든 것을 걸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무거울 수 있는 짐이 이겨나갑니다. 하나님의 일, 사명을 맡은 자들은 나의 능력과 한계를 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 하나님을 바라보기에 이 엄청난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결정됩니다.(43절)

 

성도의 권한과 능력은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모습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바로 예수님으로 결정됩니다. 엘리사벳은 친척인 마리아를 마리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마리아는 어린 친척입니다.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부인입니다. 나이나 사회적인 신분이나 모든 부분에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하대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주의 어머니로 칭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은 눈에 보이는 사람의 능력과 됨됨이가 아닌 그분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들이 피한방울 섞이지 않는 사람들을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안에서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핏값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관점은 주님으로 바라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을 우리는 그들의 능력으로 보는 것이 아닌 직분자를 세우신 예수님을 바라바야 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처럼 주님을 통해 마리아를 바라볼 때, 엘리사벳이 경험한 더욱 풍성한 주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성도의 교제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마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