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목사 (로마서 4:13~25)
2021-02-28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로마서 4:13~25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Copyright © 개역개정 성경본문의 저작권은 대한성서공회에 있습니다.
말씀요약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롬 4:13~25

20세기 최고의 종교영화로 평을 받는 ‘벤허’의 줄거리는 서기 26년 로마제국 시대, 유대 귀족 벤허가 친구의 모함으로 노예로 팔려가면서 시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과정이 담긴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노예로 전락했던 벤허가 극적인 전환을 맞는 것은 로마집정관 아리우스를 해적선의 습격에서 구해주면서부터입니다. 집정관인 아리우스는 그를 양자로 삼게 되면서, 노예에서 로마의 귀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극적인 전개에는 양자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과 축복을 알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이유(13절)
벤허가 아리우스의 모든 것을 물려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허락받고 공유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어색하고, 낯선 방식이지만 본문이 쓰였던 로마시대에는 양자를 삼는 것이 사회지도층의 큰 덕목이요, 능력이었음을 감안하여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사도바울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되는 요건은 바로 부모에게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는 분에게 있습니다. 그가 자녀를 삼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을 바울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이 아닌 믿음, 율법을 자격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믿음을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생각한다면 이해가 훨씬 쉽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것을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받아주셨음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노예 같았던 처지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특권을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자녀 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지 하는 것입니다.(20절)
누군가에 내게 무엇인가를 해준다고 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요? 가능하다면 받아줄 것입니다. 그러나 터무니없거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거부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자녀 되는 믿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자녀의 대표요,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백세가 되었고, 아내인 사라의 몸도 아기를 바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바랄 수 없는 중’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자녀 된 믿음은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믿는 것입니다.(24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은 말도 안 되는 것을 전제합니다. 동정녀탄생,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 이 두 가지의 시작이 우리의 신앙의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황당하고, 어리석게 생각하는 되는 시작을 마음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공자님처럼 인간으로서 자신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훨씬 더 납득이 가지 않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내 것으로 가지지 못하는 한계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오를 수 있기 위해서는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믿는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