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위에 피어난 부활

최종환 목사 (요한복음 20:1~18(신약 182면))
2020-04-12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요한복음 20:1~18(신약 182면)

1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1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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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절망위에 피어난 부활
요 20:1~18

2001년 새천년이 시작되고, 부임했던 성광교회에서 아직도 남아있는 생생한 기억은 교회 마당에 있는 자목련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목련을 본적도 없었고, 자주색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목련꽃이 사순절 즈음에 피어서 교회마당을 핏빛으로 적시다가, 부활절 즈음에 잎사귀를 보이는 모습이 참 인상에 남습니다. 목련은 꽃이 져야 잎이 나옵니다.
우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활도 꼭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기에, 교회사에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육체를 진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 이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랬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큰 한계인 죽음을 당하셨어야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한번일 수 있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보면 우리는 이런 죽음의 정서들을 여러번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절망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끝이 나는 것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런 절망스러움을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할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이 될까요?

우리는 사망의 골짜기를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11절)
죽음의 권세, 고통과 아픔들은 우리가 원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11절의 마리아를 보십시오.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도 힘든 일인데, 억울하게 죽으신 예수님을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힘들게 가시는 것을 지켜봤던 마리아, 그 마리아는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을 챙기러 옵니다. 왜 새벽, 미명, 어두울 때 왔는지, 주변상황을 의식하는 두려움인지, 일찍 예수님의 무덤을 챙기고자 하는 열심인지 알 길이 없지만, 마리아에겐 죽음의 큰 권세 아래서 자기가 할 것이 시신을 돌보는 것이었는데 그 시신도 없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성도님들 어려움은 엎친데, 덮칩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를 보아야 합니다.(18절)
그런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이 죽음에서 부활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는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성도님들. 우리의 생각처럼 상황이 되어지고, 살림이 이루어지지 않을찌라도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주님을 만나고, 봐야 합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힘을 얻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인생의 고난과 역경들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안식일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주일성수主日聖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님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떤 상황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극복하고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롬8:37) 믿음의 선배들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요, 나의 부활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금의 상황이 절망스럽다면, 기억하십시다. 예수님을 만나야 할 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