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녀 목사 (룻기 1:15~18)
2022-02-27 | 주일 1부 예배

성서본문: 룻기 1:15~18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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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헤세드의 사람들

룻기 1 : 15~18

 

룻은 이스라엘 여인이 아니라 모압여인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인공 룻을 통해 헤세드의 삶의 정의를 가르쳐줍니다. 헤세드는 은혜, 불변의 사랑, 또는 인자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수없이 언급되는데 절반 이상이 시편에 쓰여져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헤세드의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할 필요가 없음에도 하는 것입니다.

오르바처럼 해도 잘한 것입니다. 정상적이며 어찌 할 수 없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헤세드의 삶은 할 수 없음에도 엑스트라 마인드로 가는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는 것,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자기의 범주를 넘어서 보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은 헤세드가 아닙니다. 같이 살면서 시모 모시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나… 여기는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룻은 그 결단을 했다는 것입니다.

 

  1. 변화를 위해 앞장 서는 것입니다.

헤세드 삶의 두 번째 원리를 룻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헤세드의 삶을 살면서 룻이 시어머니를 도와준다는 이야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한다면 아무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건 수동적인 삶입니다 룻은 밤새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할수 있을까? 낯선 땅에서?…” 룻이 할 수 있는 건 한가지입니다 되든 안 되든 가서 “이삭을 주워보겠다고 떼를 써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룻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그 유일한 한 가지, 그 일을 위해서 주도권을 잡고 변화를 위해서 앞장을 선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그 말을 한 것이지요. “뉘겐가 은혜를 입거든… 이삭을 주으러 갔다 오겠습니다”. 룻은 적극적이고 목표지향적, 추진력이 있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룻의 사명은 그 목표는 시어머니를 먹여 살리는 것, 거기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1.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헤세드의 삶을 보면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이런 삶의 능력입니다. 룻의 모습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괴롭습니다. 하필이면 룻이 왜 모압여인이라는 것인가? 괴롭습니다. 이스라엘 여인이어야 하지 않는가? 모압여인 룻!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모압여인이 하나님의 백성보다 더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보아스가 감동했고, 보아스의 친절을 통해 나오미가 변했습니다. 나오미는 자기의 비통함으로 하나님을 언급하기도 꺼려했는데 ‘여호와가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너를, 그 사람에게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룻을 위하고 보아스를 위하고, 나오미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룻에게서 나옵니다. 맨 나중에는 아들을 안겨주므로 동네 여인들이 다 찬송을 합니다. 그녀의 헤세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헤세드를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룻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한 것입니다 그 작은 헤세드의 발자국이 이런 인류의 변화를 가져오는 삶이 될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플렌입니다. 주위에 헤세드의 삶을 살 수 있는 작은 일들이 널려 있습니다. 우리 또한 헤세드의 삶을 살기를 결심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