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일을 당할 때

최종환 목사 (창세기 22:1~14(구약 27면))
2020-06-28 | 주일 2부 예배

성서본문: 창세기 22:1~14(구약 27면)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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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황당한 일을 당할 때
창 22:1~14

우리는 황당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2절)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불쑥 불쑥 들어오는 일들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돼지를 길렀더니 돼지 콜레라가 유행합니다. 마늘을 심었더니 마늘 파동이 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우리는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멈출 수가 없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1절에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귀띔을 해주지만 아브라함은 모릅니다. 오늘 단지 아들을 바치라는 이 음성에만 귀를 귀울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이 메시지를 들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황당한 일을 당한 거지요. 돈 때문에, 관계 때문에, 신앙 때문에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황당한 일을 당하게 된 겁니다. 우리는 황당하거나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될 경우, 신앙을 떠나거나, 영적인 퇴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당한 거지요. 황당하고, 알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그 일을 맞부딪히거나, 그 일을 무시하거나 피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직접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는 상황을 주시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음성 없이 상황으로 이끌려 들어갈 수가 있기도 합니다.(욥의 경우처럼) 이런 상황속에서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는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집중해 보도록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아브라함처럼 거창하거나, 의미심장하지 않을지라도 황당하고, 어이없고, 알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이 하던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3절)
아브라함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고, 당황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은 특별하게도 느껴질 수 있지만 아브라함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의 일상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에게 황당하고, 알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일상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방해요인을 최소화 합니다.(5절)
아브라함은 황당하고, 어려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이 일을 함께 할 사람들이 아닌 방해가 될 사람들은 머물게 합니다. 알 수 없는 일을 진행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며, 자기의 일들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내버려 둡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일을 하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하시거나, 제자들을 물리치시거나, 또는 몇몇 제자만을 부르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8, 10, 14절)
우리는 돈 때문에, 건강문제로, 또는 대인관계에서, 황당한 일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제일 황당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일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그리곤 승리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황당함은 결국 끝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의 한계일 것입니다. 이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붙잡고, 붙들고 갈 때 우리는 그 끝에서 주님을 뵐 것입니다.